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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이야기

일본의 버블 붕괴에 대해서

by 윤슬이다 2024.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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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개인적인 공부를 위한 글입니다. 지금 경제 상황과 다릅니다.

 

1987년 루브루 합의 이후 일본의 자산시장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고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그랬다 (현재 글로벌 시장은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서 공급만 과하게 있는 상황이다. 거기서 일본이 루브르 합의를 통해 엄청난 수요자로 등장을 하게 된 것)

블랙먼데이

일본과 같이 루브르합의에 참여했던 서독이 시장의 자산과열 현상이 나타나자 불안감을 비추며 금리인상 카드를 만지작 거리기 시작한다. 눈치 보고 있던 일본 역시 금리인상을 하려는 분위기를 풍기자 시장참여자들이 글로벌 시장 수요위축의 분위기를 읽고 공포감에 도망가기 시작한다.

 

1987년 10월 19일 미국 다우지수는 그날 단 하루에 22% 이상 하락을 했다. 당시 전 세계 기업 랭킹 10위에 위치한 기업들은 대부분 일본의 은행이나 수출 대기업들이었다 (미국의 기업들이 일본에 깨갱거리던 시절이 있었음) 1989년 블랙먼데이의 충격이 어느 정도 해소 되었고 자산버블이 87년보다 훨씬 심해졌다.

 

저조한 물가도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고 대미 무역흑자도 어느 정도 축소된 만큼 루브르 합의에 따른 눈치보기의 영향이 조금은 벗어나기 시작했다

일본의 정책 실책

버블이 워낙 심해진 만큼 물가가 오르기 시작하자 일본의 중앙은행은 금리를 빠르게 인상하기 시작했고 당시 2.5%였던 기준금리를 1년 동안 6%로 인상했다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자 당시 LTV(주담대)가 120%였단 대출자들의 이자부담이 조금씩 늘어나자 너도나도 집을 팔 시 시작했고. 집가격이 급격하게 하락하면서 부채들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10만 원이었던 집을 12만 원 대출받아서 샀는데 집값이 떨이 지기 시작해 집이 5만 원이 되었다.

 

하지만 내 대출은 그대로 12만 원이다) 자 이제 빚을 어떻게 갚을까? 당연히 부채를 갚지 못하는 채무불이행자들이 넘쳐났고 그 부담은 은행에게로 넘어왔으며 은행 역시 신규대출을 신중하게 해 주기 시작했고 개인들도 소비가 극도로 위축되어 물건값이 하락했고 결국엔 디플레이션이 일어났다. 이렇게 경제의 장기 침체가 시작

일본의 정책 실책 2

디플레이션을 방조했고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민감 소비가 심각하게 하락했었지만 은행의 부실 대출 역시 상당한 문젯거리였다 하지만 일본은 은행의 부채는 내버려두고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부동산 경기 활성화는 정부 차원에서 과감한 인프라 투자 등을 진행함으로써 건설분야, 고용, 도로 및 교량 접근성 개선, 지방부동산의 거래 활성화등을 유도하는 것인데 당시 일본은 이미 상당한 부동산 버블로 인프라가 어느 정도 구축되어 있는 상태라 그 효과는 미미했다.

일본의 정책 실책 3

일본 정부의 인프라 투자로 재정적자는 커져만 갔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허튼짓한 거다 더불어 은행의 부실 채권 문제에 대해 정부는 계속 시간을 질질 끌면서 뭉개고 있었고 은행은 할 수 없이 부실부채를 안고 가고 있었다.

 

수년이 지나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찾아오며 그제야 은행권에 대한 공적 자금 투입을 비롯해 부실채권 처리를 시작하게 된다.

 

 

은행은 = 심장 경제가 잘 흘러가려면 은행부터 구해야 된다

 

1. 1987년 버블의 징후가 짙게 묻어날 때 버블의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는데 실패 (블랙먼데이와 엔화 강세로 인한 물가 안정 때문에)

 

2. 89~90년 자산가격 버블을 제어하기 위해 너무 빠르고 강한 금리인상 단행

 

3. 버블붕괴로 자산 가격이 급락하는데 적극적인 자산 가격 안정화 대책을 시행하지 않음

 

4. 금융기관의 부실이라는 핵심적 병을 치료하지 않고 부동산 경기부양과 같은 쓸데없는 짓을 함